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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지타임] 엔텐카

커플링: 재유상호, 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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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침몰할 것 같은 푸른 하늘.
 
따갑게 내리쬐는 햇빛. 웃음과 덧없는 한숨.
 
초목과 부드러운 바람 소리. 건너편 인도 선 채, 손을 흔드는 당신.
 
안녕, 상호야.
 
완벽한 추억이 되어줄게.
 
도로 위로 산산조각나 흐트러지는 적색.
 
비명 소리.
 
인파가 몰려들었다가 불순한 소문 몇 마디를 내뱉고 사라진다.
 
어째서 그렇게 된 거예요?
 
원망해도 대답해 줄 형은 이제 없겠지만,
 
내 눈 앞에서,
 
보여주듯이…
 
이렇게 죽어버려서 형의 인생은 도대체 무엇이었던 걸까.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 걸까.
 
여름은 형을 데려간 계절.
 
그러니까, 좋아하지 않아.
 
싫어하는 여름. 영원이 되어버린 여름.
 
언제나의 아침, 언제나의 장소에서 다시 형을 만나고, 형의 체온에 내 기억을 바쳐.
 
이 사랑이 종극을 맞이할 때까지.
 
炎天下
 
KPC 진재유
 
PC 기상호
당신은 눈을 뜹니다.
어두운 공간, 불규칙적인 호흡. 굳게 쳐진 커튼 너머로 눈부신 햇살이 스며듭니다.
빛무리처럼 카펫 위로 떨어지는 먼지 입자들. 희미한 프리즘. 당신은 그 광경이 세상의 전부인 듯 멍하니 바라봅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무엇을 위해 눈을 떴는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도. 떠오르는 것은 단 하나, 이 장소에 있어야 할 다른 체온.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손을 잡아주고, 이야기를 나눌…진재유입니다.
당신은 그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 남은 마지막 명제. 어제까지만 해도 같은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외출이라도 한 것일까요. 나가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
하지만, 이상한 일이네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재유를 찾으러 가 볼까요?
 
기상호:"햄...?" 익숙했던 온기가 느껴지지 않자 서서히 눈을 뜨며 주변을 살펴본다. 일단 이 곳은 어디지?
 
:당신은 소파 위에서 일어납니다. 소파가 위치한 곳은 거실로, 스무 걸음 정도로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아담한 크기입니다.
천장에는 조잡한 전등이 달려 있고, 창을 커튼으로 막아 두어 어두침침합니다.
진재유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군요.
【소파】, 【테이블】, 【TV】, 【책장】, 【베란다】, 【진재유의 방】, 【현관】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현관 옆에는 【욕실】이 있습니다.
 
기상호:"재유햄, 거기 계세요? 이곳을 오게된 기억이 전혀 없어가." 진재유의 방 쪽으로 노크한다.
 
진재유의 방
기상호, 정신력 판정.
 
기상호:
정신
기준치: 60/30/12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침몰할 것 같은 푸른 하늘.
 
따갑게 내리쬐는 햇빛. 웃음과 덧없는 한숨.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재유가 당신에게 손을 흔듭니다.
 
표정은 부드럽지 않고 활기찬 느낌이라곤 전혀 없지만 그가 당신을 반가워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가 입에 손을 말아 데고 뭔가 말을 한 것 같았지만.
 
그 순간, 끼이익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울립니다.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
 
재유가 있던 자리에 트럭이 틀어박혀 있습니다.
 
...따위의 환상이 순간 당신의 망막을 스쳐지나갑니다.
 
방금 뭘 본거죠? 하지만 별로 중요한 건 아니겠죠.
 
자, 재유를 찾아봅시다.
옅은 노란색 벽지와 흰색 카펫이 어우러져 따스한 느낌을 주는 방입니다. 【침대】와 【서랍장】, 【옷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재유는 여전히 보이지 않네요.
 
기상호:"(햄은 잠시 외출했나...)" 일단 햄의 흔적을 찾기 위해 옷장을 열어보자. 걸어둔 옷이라도 있을테니.
 
:당신의 옷이 몇 벌 걸려 있습니다. 뭔가 발견하고 싶다면, 관찰력 판정.
 
기상호: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옷 한 벌에 무언가 검은 액체가 잔뜩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상태로 오래 방치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기상호:검은 액체의 정체를 유심히 살펴보려다,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관둔다. 애초에 오래 전에 굳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재유햄이 그런것 같지도 않고.
...서랍장은?
 
:두 칸짜리 원목 서랍장입니다. 첫 번째 칸에는 수건이나 구급약 따위의 물건이 들어 있고, 두 번째 칸에 작은 노트가 놓여 있습니다.
 
기상호:"작은 노트라... 이거이거, 추리물에선 이런 요소는 절데 놓쳐선 안되는 법."
 
:살펴보나요? 당신은 노트를 집어듭니다.
검은 표지의 양장 노트입니다. 처음의 몇 페이지가 마구잡이로 찢겨나가 있고, 그 뒤는 누군가의 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1페이지
 
재유햄을 잃고,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로부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학교도 농구도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혔다.
 
요리를 하거나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몸을 씻는 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그저 귀찮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다만 햄을 잊고 싶지 않았기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재유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것밖에 없다. 좀 더 많은 추억을 나눴더라면 좋았을 텐데…
 
2페이지
 
일기를 쓴 다음날, 거짓말같은 환상과 만나게 되었다.
 
신이 나타난 것이다.
 
종교를 믿은 적은 없지만, 재유햄을 살려주겠다는 말에 그저 매달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악마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악마더라도, 괴물이라도 상관없다. 햄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무엇이건 할 수 있어.
 
3페이지
 
신의 제안을 수락한 날부터, 나는 작은 모형정원과 같은 곳에 갇히게 되었다. 혼자가 아니다. 재유햄 함께. 햄은 감금당한 것에 거부감을 보였지만, 지금은 이 생활에도 익숙해진 모습이다.
 
이야기에 나올 법한 매일매일. 평온한 일상.
 
햄의 기일만을 되풀이하는 여름.
 
이럴 거면 겨울에 죽을 걸 그랬다. 더운 건 싫은데.
 
햄이 그렇게 말했을 땐 조금 섬뜩했지만, 생활에 불만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4페이지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재유햄을 유지하는 대가로서, 나는 중요한 기억을 하나씩 잊어버리게 된다. 해가 질 때마다 상실감에 젖는 나를, 재유햄이 다정하게 위로해주었다.
 
전부 잊어버려도 괜찮아. 기록이 있으니까. 일기도, 사진도, 영상도 잔뜩 남겼다.
 
햄이 살아 있는 세상만을, 나는 믿을 수 있어.
나머지 페이지는 재유와 나눈 추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은 기상호, 이성 판정 1/1d2.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2
(
1
)
 
=
1
 
:이 노트도 벌써 다 써 가네요. 새로운 노트를 살 때는 재유의 취향도 고려해보는 게 어떨까요.
그래요, 전부 기억났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죠, 기상호?
당신이 이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매일 아침을 공백으로 맞았던 이유.
밤을 두려워했던 이유. 백지 퍼즐이 하나씩 맞춰져 완성되어갑니다.
밤이 되면 무너져내리는 퍼즐을, 다시 한번.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던가요.
 
:하지만 후회는 없겠죠?
전부 당신이 선택한 결과대로의 일이고, 그는 오늘도 당신의 곁에 있으니까.
영원히, 당신의 곁에.
…재유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빨리 그와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기상호:"...이런 쓸데없는 노트나 볼 시간은 없어, 재유햄은 대체 어디에..." 온기를 찾아헤매는 듯 옆의 침대를 만지작 거린다.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흰 쿠션과 담요가 놓인 침대입니다. 두 사람이 누워 자기에는 조금 좁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시트는 싸늘하게 식어 있습니다. 아래에 보다 만 신문이 펼쳐진 채 놓여 있네요.
 
기상호:저건 평소에 재유햄에 즐겨 읽던 신문? ...아니, 그런 기억은 아직 없는데...
신문지를 제대로 읽기위해 양손으로 펼쳐 든다.
 
:신문을 살펴보면 교통 사고와 관련된 기사가 기제되어 있습니다.
1년 전 분실된 사망자의 시체 일부를 아직 수색 중이라는 것 같습니다. 세상 참 무섭습니다.
기상호, 지능 판정.
 
기상호: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7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상호, 잊어버려라.
당신은 재유가 상냥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걸 듣습니다. 하지만 당신 주변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곤 보이지 않습니다.
환청을 들은 기상호, 이성 판정 0/1
 
기상호: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3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햄, 이런 장난 재미없어요..." 이 방에 더이상 있고 싶지 않다는 듯 방에서 뛰쳐나온다. 재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단서는 더 어디있지? 거실의 현관 쪽으로 다가간다.
 
거실
기상호, 정신력 판정.
 
기상호:
정신
기준치: 60/30/12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그래서 니는 거실로 나왔고 현관을 살펴보겠다고?
현관은 대한민국 어디라면 볼 수 있는 철제 문이다.
 
기상호:"...네, 아무래도 햄이 여 안에 있는 것 같진 않아서."
 
:흠... 그렇다면 문을 열 기가?
 
기상호:"밖에는, 햄이 기다리고 있는게 맞나요?"
"저는 햄을 다시 한번 보기위해 이곳에 있는 거예요, 햄이 없다면 문을 열 이유가 없어요."
 
:문은 아무리 잡아당겨봐도 요지부동이다. 문을 따거나, 힘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시도해보고 싶다면 열쇠공 판정 또는 근력 판정을 해봐라.
 
기상호:"판정? 햄도 그런 메타발언 할 수 있는 캐릭터였어요?"
 
:밖에는 음. 니가 신에게 소원을 빌어 모형정원을 만들었기 때문에 내는 그 밖으로 나가기 힘들다. 그래도 시도해보고 싶다면야.
...메타발언이 뭐고?
 
기상호:"그런게 있어요~ 저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좋아하는 그런거." 애써 분위기를 띄우려 웃어보지만 힘들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신에게 소원을 빌어 모형정원을 만들었다고요, 제가? ...설마 햄도 방에 있던 그 노트를 읽으신거예요?"
 
:니가 나한테 말했지 않나? 신한테 니 기억을 대가로 내를 유지시키고 있다고. 내가 맨날 니 무릎베개 해주면서 니가 누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줬는데.
그걸 몇번이나 해줬는데 말을 안 해줘도 눈치를 채지.
 
기상호:"큭큭, 햄 무릎에 머리 기대다 졸아서 그대로 침 잔뜩 흘린 적도 있었죠. ...이게 아니라! 딱히 햄 귀에 딱지 앉으라고 말한건 아녔는데 용케 기억하였네요, 실은 재유햄이라면 다른 귀로 흘려들으실 줄."
 
:니가 하는 말인데 내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리가 없지 않나.
 
기상호:"오, 재유햄이 웬일로 그런 말을." 기분 좋다는 듯이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씨익 웃는다. "그럼, 재유햄 말대로 이 문한테 근력 판정이라도 해볼까요?"
 
:하고 싶으면 함 해봐라.
 
기상호:"잠시만요, 햄. 근력을 최대한 끌어모아 방출하는 일이 중요한지라"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중얼중얼거리며 힘을 쥐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갑니다, 에네르기파!"
근력
기준치: 60/30/12
굴림: 61
판정결과: 실패
 
:...........상호. 용 그만 써라. 니가 아무리 그래도 열릴 것 같지가 않다.
 
기상호:"음, 햄. 간만에 200퍼 출력을 시도했더니 몸에 과부하가. 절대 컨디션 난조가 온건 아니고요, 아시죠?"
 
:알겠다. 알겠다. 근데 니 요즘 운동 설렁설렁 하지 않았나? 아니, 아예 안 나갔지. 근육 다 빠져뿟네... 이걸 우째...
 
기상호:"...영 걱정되시면 나중에 재유햄이 봐주시면 되겠네요. 저는 근력 회복하고, 재유햄도 운동되고, 이걸로 만사 해결."
 
:그래. 아주 죽지 않을 만큼만 굴려주마. 각오해라. 그동안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걸 만회하고 남을 만큼 운동시킬테니.
그래서 다른 데 보고싶은 곳 있나?
 
기상호:익살스럽게 큭큭하고 웃으며. "당연하죠, 햄. 피의 맹세하신겁니다? " 거실의 소파 쪽으로 슬그머니 몸을 옮긴다.
 
:어느 가정집에나 있을 평범한 소파다. 조금 낡아 인조가죽이 들리고 떨어지려 하는 부분이 있다.
니랑 내랑 여기서 앉아 자주 영화나 애니를 봤지.
지금은 니가 여기 누워 잤기 때문에 가운데가 약간 꺼져있다.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면 관찰 판정을 해볼 수 있다.
 
기상호:"애니로 채널을 돌리면 얼마안가 금새 졸던 햄의 얼굴 정말 가관이었죠." 과거의 내가 누워서 움푹 파인 소파의 가운데 부분을 살펴본다.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흠. 솔직히 말해 내랑 잘 맞지 않아서. 그래도 상호 니가 좋아하는건데 집중 못하고 졸아서 미안타.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적」이라는 책이 소파 가장자리에 껴 있다.
책 중반부에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 있는데, 표시된 문구는 다음과 같다.
「암흑의 신인가, 타락한 대천사인가, 그 눈의 주변에는 변덕스런 성격이 나른하게 반짝였다.」
니 이런 거 좋아하나?
 
기상호:"흠..." 괜히 과장하여 집중하는 듯한 시늉을 하며, "이런 오컬트 장르도 가끔씩이라면 재밌죠. 햄이 가져다 놓은거예요?"
 
:내는 아니다. 이런거 니가 관심있어 하지 않나. 내는 오컬트나 그런 거에 관심 없다. 니가 락 엘범 보고 이거 무슨 악마 강령회 그런 거냐고 물어본 적은 있어도. 그때 진심이 아니라 놀린 거 맞지?
 
기상호:"당연하죠 햄, 햄은 제가 아는 사람 중 준수햄과 더불어 이런 장르와 거리가 제일 먼 사람이니까요."
"그냥... 저도 이 책을 산 기억이 전혀 없어서."
 
:흠... 까먹을 수도 있는 거니까. 내도 자잘한 일 많이 까먹는다. 그래도 어디 문제 있을 수 있는 거니까 이상하다 싶으면 빨리 병원 가보고.
 
기상호:"아아앙~... 햄이 보호자로 같이 가주시는거 맞죠? 돈가스로 회유해서 병원 데려가면 안됩니다?"
 
:알았다. 같이 가주마. 손도 잡아줄까?
 
기상호:"...갑자기 이렇게 나오시면 꽤 곤란합니다."
장난을 치면서도, 앞에 놓여진 책이 신경쓰이는 듯 책을 펼처본다.
 
:책을 펼쳐보면... 내용은 평범한 소설책이다. 작가는 H.P 러브크래프트. 특이한 이름이구만.
니가 이걸 많이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내용도 니가 좋아할 것 같다.
니 괴물 나오고 그런 거 좋아하지 않나.
 
기상호:"이 작가를 모르다니... 햄도 아직 멀었군요." 고개를 절레절레, "애독자는 아니지만, 기본 교양으로서 자주 접한 책이죠. ...말하고나서보니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것 같기도 하고요."
 
:흠. 유명한 작가였구만? 기본 교양씩이나 되다니. 대단한 사람이네.
 
기상호:괜히 본인이 으쓱해하며, "뭐, 그런 분이죠. 일단, 이 책은 테이블에다 둘게요." 책을 들어 테이블 쪽으로 향한다.
 
:테이블 위에는 검은 비닐봉투가 놓여 있다. 안을 보면 삼각김밥과 컵라면이 들어있는데, 둘이 먹기는 모자르지. 니가 묵어라. 내는 괜찮다.
 
기상호:"제가 전부 다요? 맛있어보이긴 한데... 지금은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가. 쟁겨놨다 나중에 먹을게요."
 
:그래. 밥 굶지 말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그래야 키 더 큰다.
 
기상호:"...햄이 할 소리는 아닌것 같은데? 그런 의미라면 이건 햄이 드셔야 맞는거죠"
 
:......... 니 지금 내를 멕이는기가?
 
기상호:고개를 홱 돌리며 "자자! 지금 책장 쪽은 조사를 안했죠? 빨리빨리 해봅시다!"
 
:이 되바라진 놈. 이뻐서 한 번은 봐준다.
작고 낡은 책장에는 책이 꽂혀 있는데, 전부 이계의 신에 관한 것, 주술에 관한 것, 모독적인 생명체들을 다룬 것 뿐이다.
니가 이런 괴물 나오고 하는 걸 좋아한다는 건 알지만 이 정도로 좋아했나? 이건 좀 심한 것 같은데.
 
기상호:"아뇨, 햄. 제가 이런 장르를 좋아한다고 하긴 했지만 이정돈 아녜요. 이 수준은 경지에 이른 '진짜'들이나 가능한거라고요."
 
:그럼 니가 그... 찐이라고 하는 부류인갑네.
 
기상호:"후우... 햄이 아직 '진짜'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래요. 이렇게 나약해서야 원."
 
:흠. 내랑 사귀는 애가 '진짜' 같은데.
 
기상호:"흐흠, 햄이 정 그렇다면... 맞다고 인정해드리죠. 흔하지 않은 기회인거 아시죠? 하지만 정말 이 책장의 책들은 제 취향은 아녜요, 전 차라리 이런 것보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악당들이 전부 다 때려부수고 정의의 영웅이 응징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요. 햄은 애니 볼때마다 졸아서 모르려나."
 
:그런 게 니 취향이구나. 기억해 놓겠다.
그런데 괴물이 나온다는 점에서 거기서 거기 아닌가...
 
기상호:"엄.연.히 다릅니다만? 기억해두세요. 제가 드리는 숙제입니다. ...그나저나 정문을 못연다면 설마 베란다도?"
 
:니가 좋아하는건데, 꼭 기억하지. 베란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저 너머에는 내가 없으니, 열어볼 필요도 없다.
 
기상호:"그럼... 굳이 볼 필요는 없겠네요. 그저 시간낭비일 뿐. 그 시간에 전 욕실이라도 둘러보도록 해보죠."
"...그전에! TV는 켜지는게 맞나? 내 삶의 즐거움 중 하나가 사라지는건 좀 곤란한데"
 
:TV는 잘 켜진다. 켜보면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는데, 교통 사고에 대한 이야기다.
부산광역시 ※※구 사망자의 ※※.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유해 일부를 못 찾고 있다고 한다. 시체조각에 발이 달렸을 리도 없는데, 세상 참 무섭다.
별 좋은 내용도 아닌데, 꺼라.
 
기상호:재유의 말에 고분고분 TV 전원 버튼을 도로 누른다. "의심스러울 정도로 방에 있는 요소들이 교통 사고를 가리키고 있다... 썩 유쾌하진 않네요."
 
:그러게 말이다. 와 그런지는 모르겠다.
 
기상호:"...그쵸? 누가 이런 재미없는 장난을. ...아무튼 욕실로 같이 가보시죠."
 
욕실
기상호는 정신력 판정.
 
기상호:
정신
기준치: 60/30/12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욕실이다. 타일에는 떼가 꼈고, 물냄새가 약간 난다.
살펴볼 수 있는건, 【세면대】, 【욕조】, 【찬장】 정도겠지.
 
기상호:들어가자마자 세면대 쪽으로 서서히 다가간다. "...지금 이 거울 안에 서 있는 제 옆에 재유 햄이 있었으면 참 좋겠는데 말이죠."
 
:세면대 앞에 서면 니 얼굴만 비친다. 그런데 꼴이 참 가관인게, 머리는 제멋대로 헝클어져 있고, 눈 밑은 퀭한 매우 수척한 모습이다.
아무리 우리가 편한 사이라고 해도 이런 모습을 내한테 보여주면 부끄럽지 않나? 집 안이라도 인간 꼴은 갖추고 다녀라. 머리부터 빗고!
 
기상호: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어 헝클어진 머리 끝을 만지작거린다, "그치만 햄... 이런건 햄이 챙겨주셨잖아요. 후배를 보살피는게 선배의 역할이 아녔나? 그것도 소중한 애인을."
 
:언제라도 내가 니를 챙겨주고 싶은데 그래도 니가 기본적인 건 할 수 있어야지! 그렇게 머리 갸웃거려도 봐주지 않을 거다.
머리부터 빗어라. 빗질 하고 세수도 하고 잠도 제대로 자고.
 
기상호:"...햄 날이 갈수록 잔소리가 점점 심해지는 거 알아요? 그래도 그렇게 할게요. 솔직히 햄이랑 대화하는 게 되게 오랜만같이 느껴져서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세면대의 물을 받아 대충 얼굴을 닦고, 머리에 물을 묻힌다. "어때요, 제법 사람같아졌죠, 재유햄?"
 
:니가 내를 걱정하게 하니까 잔소리가 많아지지. 어? 잔소리도 다 관심이고 사랑이다. 그건 그렇고 오랜만이라니. 맨날 니 어리광하면서 꿍얼거리는거 답해줬는데 그건 생각 안 나나?
니 그 덩치로 어리광 부리면서 얼굴 비벼대면 내는 허리가 휜다. 좋긴 하지만.
그래그래. 봐줄 만 하긴 한데, 대충 하지 말고 비누로 거품 내서 확실히 해라, 확실히.
 
기상호:"그쵸, 어제도, 엊그제도, 똑같은 일상이 계속되었는데... 이상하네요. 지금은 물칠로 만족해주세요. 실은 마음이 괜히 조급해지는거 있죠."
 
:뭐가 마음이 조급해지노.
 
기상호:"그러게요, 저도 저를 잘 모르겠네요." 찬장엔 뭐가 있나, 활짝 열어본다
 
:내는 언제나 니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조급해하지 마라. 찾으면 볼에 뽀뽀라도 해줄까?
찬장에는 샴푸나 린스, 비누 따위의 물건이 들어 있다. 구석에 무언가 커다란 통이 하나 놓여 있는 것 같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기상호:"...지금 해주시면 안되나요, 햄?"
 
:내가 어디 있는줄 알고 해달라 하나. 찾기나 해라.
 
기상호:"말이 그렇다는 거죠, 재미없네요 햄." 신경쓰지 말라하면 더 신경쓰이는 게 사람의 심리 아닌가? 구석의 통이 뭔지 살펴본다.
 
:흥. 찾으면 아주 꽉 안아줄 테니 찾아보기나 해라.
구석에 통 그런 건 신경 쓸 필요 없다니까? 일단 다른 것부터 봐라.
 
기상호:"아직 관찰 이벤트가 뜨기엔 이르군요? 좀 더 주변을 조사하고 봐야만. 욕조엔 어떤 이벤트가 뜰까나."
 
:흰 욕조인데 떼가 껴서 누리끼리한 부분이 있다. 식은 물이 차 있고, 노트에서 떼어낸 것 같은 종이 페이지들이 떠다니고 있다.
건져내서 읽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종이가 멀쩡한지 결정하기 위해 행운 판정이 필요할 것 같다.
 
기상호:"행운, 운에 상황을 맡기는 것은 제 주 특기죠"
기준치: 70/35/14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니는 민첩한 손놀림으로 낱장을 다 건져낼 수 있었다. 운동 안 하는 것 같더니만, 손놀림은 썩지 않았구만. 연습 더 하면 슛도 나아지겠어?
노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페이지
 
재유햄을 잃고,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로부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학교도 농구도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혔다.
 
요리를 하거나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몸을 씻는 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그저 귀찮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다만 햄을 잊고 싶지 않았기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재유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것밖에 없다. 좀 더 많은 추억을 나눴더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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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 속에서 전부를 데려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인데, 후회심이 들어 자꾸만 자신을 탓하게 된다. 무리할 것을 그랬다.
 
머리뿐이라니,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같이 잠드는 것도, 식사도, 목욕도 함께 할 수 없어.
 
차가운 용액 속에서 흔들리는 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퇴색되어가는 햄의 모습이 모습이, 안타깝다.
 
햄에게 내 체온을 나눠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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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을 떠올려냈다.
 
신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 나는 종교를 믿은 적은 없지만… 재유햄을 살려주겠다는 말에 그저 매달리고 말았던 거야.
 
하지만 악마더라도, 괴물이라도 좋아.
 
햄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무엇이건 바칠 수 있어.
 
나는 환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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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성햄한테 들켰다.
 
태성햄은 나를 보고 놀라더니, 상황을 알려주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재유햄의 유해를 찾는 작업은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내가 용의자로 지목당했다니, …이상한 일이다.
 
재유햄은 살아 있어. 살아서 나와 같이 있는 것 뿐인데.
 
도망쳐야 한다.
 
나는 작은 모형정원과 같은 곳에 갇히게 되었다. 혼자가 아니다. 재유햄과 함께.
 
재유햄은 감금당한 것에 거부감을 보였지만, 지금은 이 생활에도 익숙해진 모습이다.
 
이야기에 나올 법한 매일매일. 평온한 일상.
 
햄의 기일만을 되풀이하는 여름.
 
이럴 거면 겨울에 죽을 걸 그랬다. 더운 건 싫은데.
 
햄이 그렇게 말했을 땐 조금 섬뜩했지만, 생활에 불만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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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현실은 잊어버리는 게 낫다.
 
싫은 일투성이니까. 도망가도 괜찮아. 도망간 곳에 좋은 일이 없더라도 괜찮아.
 
재유햄을 유지하는 대가로서, 나는 중요한 기억을 하나씩 잊어버리게 된다는 설정이다.
 
해가 질 때마다 상실감에 젖는 나를 햄이 다정하게 위로해주었다. 전부 잊어버려도 괜찮아. 기록이 있으니까. 일기도, 사진도, 영상도 잔뜩 남겼다.
 
형이 살아 있는 세상만을, 나는 믿을 수 있어.
기상호 니는 노트를 읽었으니, 이성 판정 1d2/1d4을 해라.
아니, 이런 겉치레는 필요 없었던가? 니 정신은 이미 수치 따위로 판가름하기 어려운 영역에 진입해버리고 말았으니까.
 
기상호: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4
(
3
)
 
=
3
 
:그 노트, 다 써 가는 참이었지? 내는 그 노트 디자인 심플하고 색도 떼 안 타는 거라 좋은데, 다음번에는 좀 밝은 색으로 사 보는 게 어떻나? 남색 정도로. 검은색은 너무 답답한 느낌이 있어서.
 
기상호:"하하... 남색은 제가 좋아하는 색이 잖아요, 재유햄. 햄이 좋아하는 색이 아니라."
 
:뭐. 좋아할 수도 있지. 사랑하면 닮는다 하지 않나?
그리고 사람이 제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자기 자신이지.
 
PyuPyu:시발
 
:*ㅋㅋㅋ
*까르륵ㅋ
 
PyuPyu:어떡하라고, 우뜨카라고
 
:*키퍼 웃어요 키퍼 즐거워요 까르륵 까르륵
아무튼. 그래, 전부 기억났다. …라고 말하면 될까? 만화는 많이 안 봐서 기억 잃은 애들이 뭐라고 하면서 기억을 되찾는지 모르겠네. 기상호, 니가 말해봐라.
 
PyuPyu:나보고 어떡하라고
 
:애가 말을 못하네... 뭐, 그럼 됐다.
나가 이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매일 아침을 도피로 맞았던 이유. 현실을 두려워했던 이유.
 
기상호:"그만, 굳이 말 안하셔도 알아요. 이 공간 자체가 제가 만들어낸 허상, 이란거잖아요?"
"...저는 말이죠 햄, 햄을 살리려고 의미없는 발악을 할 때부터 이미 체념했어요, 햄을 두 눈으로 다시 볼 수 있다면 환각이라도 상관없다고. 그래서 스스로 나름의 중간과정을 끼워 넣은 건데 뭐가 문제였던건죠? 이렇게 꿈에서 깨어날 것 까진 예상 못했는데."
 
:그렇지. 니는 똑똑해서 좋다. 말귀 잘 알아듣네.
뭐가 문제냐니. 니같이 똑똑한 애가 그걸 자기 자신에게 되물어서야 쓰나. 자문자답도 내 말투를 배껴 하는 것부터가 문제지. 본인도 의심하고 싶어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말투를 구사하다니, 이 좋은 재주를 망상에 쓰는 게 아까울 정도다. 니가 말하고 있지 않나. 의미 없는 발악이라고. 니는 너무 똑똑하다. 스스로를 속이지 못할 만큼.
이제 백지 퍼즐이 하나씩 맞춰져 완성되어가는데 니라면 이 미완성 퍼즐을 보고도 하나 남은 퍼즐 조각이 뭔지 유추할 수 있겠지?
곧 해가 질 거다. 망각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러니 선택해라.
현실도피를 끝낼 건지, 아니면 영원히 함께 있을 건지.
 
:욕실의 찬장을 열어라. 내를 만나고 싶었지 않나.
 
기상호:"...지금 저랑 대화를 하고 있는 햄이 정말 제가 지어낸 허구에 불과하다면, 제 머리 속의 상상이라면, 찬장을 열면 제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나요?"
 
:원하는 답이 물리적으로 존재할 거라 생각해? 확실한 건, 그게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닐 거야. 그래서 망상질이나 하면서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잖아.
그래도 찬장을 열어야지. 재유햄이 기다리고 있어.
 
기상호:"사실, 전 햄이 뭘 말하든 따르고 싶지 않아요, 그냥 더이상 도망치지 못해 허망하기만 하다고요. 그치만... 지금은 제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게 맞는 거겠죠? 그냥, 찬장을 열면 햄을 다시 볼 수 있다고만 말해주세요, 그 한마디면 돼요."
 
:그래. 내가 기다리고 있다, 상호야.
 
기상호:알았다는 대답을 끝내 내뱉지 못하고 삼킨채 욕실의 찬장을 연다. 이런 상황보다 더 최악일수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최대한 담담하게 임한다.
 
:욕실의 찬장을 열면, 그곳에는 재유햄의 머리가 보관된 통이 놓여 있어.
사고 현장에서 산산조각난 재유햄의 잔해 중, 머리 하나만 간신히 챙겨서 달아났지.
포르말린은 어떻게 구했더라? 학교 실험실에 신세를 진 것 같은데. 과학쌤한테 새삼 미안해지네.
하지만 포르말린도 유해의 부패를 완벽히 막아주지 못해서, 재유햄의 머리는 내가 기억하는 것과 많이 달라.
아니, 내가 기억하는 재유햄의 얼굴이 저 썩어 문드러진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해야 정확하겠지.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가 부패하는 채로 통 속을 떠다녀도, 이성 판정은 하지 않아.
 
:아우터 갓이니, 그레이트 올드 원이니 하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내 소원을 들어준 신이든 악마든 그딴 건 없었으니까.
나는 어떤 모독과도 마주한 적 없으니까.
재유햄은 눈을 감은 채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
환청은 들리지 않고, 내 머릿속을 울리는 건 내 독백뿐이지.
망상이 사라진 곳에, 나 혼자만 남아있어.
이제 나는 어떻게 할까?
 
기상호:머리 속의 음성에게 말을 건네듯 정면의 허공을 보며 말한다, "어떻게 하긴, 재유 햄 말대로 내는 슬슬 어리광에서 벗어날 나이인갑다. 그렇게 보고싶던 재유햄의 얼굴을 보게되니... 쪼매 스스로가 부끄러워가."
세면대 물을 틀고 한참동안 손을 씻더니, 천천히 세안을 한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섬세하게. 그리고 조심스레, 아이 뒤통수 만지듯 머리를 다듬는다, 한참이나. 몇시간을 앞두고 소중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사람처럼.
그리고 찬장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신체를 살며시 든다.
"햄은 안그래보여도 잔소리가 심하니까, 아니지. 심했으니까. 더 이상 지체하면 정말 화낼지도 모른다. 원래 착한 사람이 화내면 더 무섭다 아이가. ...내는 대체 누구랑 얘기하는기가?"
그렇게 나는 작게 헛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정문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이정도 회복했으면 300퍼 출력도 가능하겠지,라 생각하며 문고리를 잡았다.
 
당신은 바깥으로 향했습니다.
 
문을 열면, 현실의 연속이 펼쳐질 뿐.
 
이대로 발걸음을 재촉한다면 분명 더욱 잔혹한 현실과 맞닿게 되겠죠.
 
환상은 끝나고, 겨울의 개막이 당신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던 것은 당신이니까. 끝내고 싶지 않았던 것도 당신이니까.
 
실재로부터 유리되어, 그저 혼자만의 세계를 줄곧 추구하고 있었으니까.
 
굳은 결심을 해도, 그것에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잖아요.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하양. 마천루와 거리를 지나다니는 행인, 차량, 확연한 도심의 풍경.
 
하늘 가득,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 기상호 생존
 
➔ 기상호는 진재유의 죽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진재유의 유해는 제대로 법적으로 처리합시다.
 
True Ending
 
겨울, 프롤로그